여성만 마실 수 있었던 술이 있었다?
전통주에도 성별의 경계가 있었다
조선 시대는 엄격한 유교적 질서 아래 남성과 여성의 삶이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술 문화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술자리엔 주로 남성들이 참여했고, 여성은 술을 따르거나 준비하는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죠.
하지만 놀랍게도, 여성만 마실 수 있었던 술도 존재했습니다.
산모를 위한 술, 자양강장제가 되다
대표적인 예는 ‘산후주’ 또는 ‘산모주’입니다.
이는 출산 직후 산모에게 주는 술로, 쑥, 대추, 생강, 계피 등을 넣어 몸을 따뜻하게 하고 피를 보충하기 위해 빚었습니다.
이 술은 남성이 마시는 것이 금기시되었고, 오직 여성만의 술로 여겨졌습니다.
여성 의례에 함께한 ‘규방주’
혼례, 회갑, 삼칠일 등 여성 중심의 가정의례에는 별도의 술이 등장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 술은 ‘규방주(閨房酒)’라 불리며, 주로 여성들끼리 마셨습니다.
도수가 낮고, 향이 은은하며, 단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서로를 축하하고 정을 나누는 의미도 컸죠.
양반가의 비밀 레시피
상류층 여성들은 집안에서 몰래 술을 빚는 문화도 가졌습니다.
‘감주’, ‘백설주’, ‘석류주’ 같은 술은 맛뿐 아니라 색과 향까지 섬세하게 조절되었습니다.
이 술은 외부로 잘 알려지지 않고, 규방 안에서 전수되었습니다.
레시피는 자손에게만 전해지는 가보처럼 여겨졌습니다.
술을 나누는 여성들, 금기를 넘다
조선 후기에는 여성 문인들이 시와 함께 술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여성들만의 공간에서 술을 마시며 우정을 나누고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조용한 공간에서 나눠 마신 한 잔은, 단순한 음용이 아니라 그들의 ‘자기표현’이자 ‘저항’이었습니다.
그 술은, 조용히 이어졌다
여성만 마셨던 전통주는 조용히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선 산후주가 민간요법으로 남아 있고, 여성 장인들이 다시 규방주를 복원해 내고 있습니다.
이 술들은 단순히 여성의 술이 아닌, 여성의 문화와 기억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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