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전통주와 인문학

궁중 연회에 등장한 술잔의 크기는 얼마나 작았을까?

by 블로그 아지트 2025. 4. 30.

궁중 연회에 등장한 술잔의 크기는 얼마나 작았을까?

궁중 연회에 등장한 술잔의 크기는 얼마나 작았을까?

작은 잔이 주는 큰 의미

조선시대 왕실의 연회에는 늘 술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쓰인 술잔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작았습니다.

 

어떤 잔은 손톱만 했고, 어떤 잔은 한 모금이면 비워지는 크기였습니다.

왜 그렇게 작았을까요? 단순히 절약하려던 걸까요?

 

작은 잔, 큰 절제

조선은 유교 사회였습니다.

유교에서는 절제를 중요한 미덕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술을 마실 때도 ‘많이 마시는 것’보다는 ‘조심스럽게 마시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특히 궁중 연회에서는 예법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작은 잔이 예의에 맞는 도구였던 셈입니다.

 

실제로 얼마나 작았을까?

고궁박물관에 전시된 술잔들을 보면 대부분 20~40ml 정도입니다.

요즘 소주잔보다도 작습니다.

 

어떤 잔은 입구가 좁고 바닥이 깊어, 마시는 데도 시간이 걸립니다.

이런 구조는 빨리 마시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죠.

 

술을 마시는 ‘속도’까지 조절한 것입니다.

 

잔 크기와 신분의 관계

신분에 따라 잔의 크기나 재질도 달랐습니다.

 

왕은 금속이나 백자에 금박을 입힌 잔을 썼고,

신하들은 나무나 흙으로 만든 잔을 사용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술을 마셔도, 잔은 사람의 지위에 따라 달랐던 것입니다.

이는 술잔 하나로도 왕실 질서가 유지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잔이 작았기 때문에 오래 마셨다

술잔이 작다고 해서 술을 덜 마셨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자주 따르고 자주 건배하는 문화가 생겼습니다.

 

한 잔이 작으니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마시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죠.

궁중 연회에서는 단순한 음주가 아니라, 정중한 대화와 예절이 더 중요했습니다.

 

작은 잔에 담긴 철학

오늘날엔 큰 잔에 가득 따라 시원하게 마시는 문화가 많지만, 조선의 술잔은 정반대였습니다.

작지만 정갈한 잔 속에는 절제, 겸손, 배려 같은 가치가 담겨 있었습니다.

 

궁중의 작은 술잔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절을 담은 그릇이었던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