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전통주와 인문학

고려시대 공물로 바쳐진 술들 – 지방마다 다르다?

by 블로그 아지트 2025. 4. 30.

고려시대 공물로 바쳐진 술들 - 지방마다 다르다?

고려시대 공물로 바쳐진 술들 – 지방마다 다르다?

술도 공물이 되었다?

고려시대는 관청 중심의 수취 체계가 정교하게 운영되던 시기였습니다.

쌀, 베, 소금 등 생필품뿐 아니라 각 지방의 특산물도 공물로 바쳐졌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술’이었습니다.

 

술이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 왕실과 중앙 관청에 헌납되는 물품이었다는 점은 당시 술이 지닌 사회적 위상을 보여줍니다.

 

지방마다 술맛이 달랐던 이유

고려는 지역마다 기후와 곡물이 달랐습니다.

전라도는 따뜻한 기후로 인해 쌀이 풍부했고, 경상도는 조와 수수 등 잡곡이 많았습니다.

 

강원도는 찬 기후 탓에 발효가 느렸고, 황해도와 평안도는 맑은 물로 유명했죠.

이런 자연 조건은 각 지역에서 빚어낸 술의 향과 맛을 결정지었습니다.

 

공물로 올라간 술은 중앙에서 맛과 품질을 비교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습니다.

 

왕이 좋아한 지역 술이 따로 있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같은 사료에 따르면,

특정 지역의 술이 왕실 연회에 단골로 등장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예컨대 전라도에서 올라온 미곡청주는 맑고 향긋해 왕실 제사에 자주 사용되었고,

개성 근처의 곡주 역시 부드럽고 도수가 낮아 여인들이 즐기던 술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궁궐 안에서도 지역별 술맛을 두고 관원들이 평을 나누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공물 술, 단순한 헌납을 넘어선 정치적 의미

지방에서 술을 바친다는 것은 곧 충성과 연대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반란이나 세력 다툼이 있었던 지역에서 바친 공물 술은 일종의 화해 제스처이자 정치적 신호로 작용했습니다.

 

술의 양이나 종류에 따라 중앙에서의 평판이 달라지기도 했고,

품질이 떨어진 술을 보냈다가 꾸짖음을 받은 사례도 문헌에 보입니다.

 

고려 술맛, 지금과 얼마나 다를까?

당시의 공물 술은 오늘날 전통주 중에서도 귀한 계열에 속하는 ‘청주’나 ‘약주’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목넘김이 부드럽고 발효 향이 은은하며,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이 특징이었죠.

 

곡물 외에도 약재, 꿀, 생강 등을 넣어 만든 ‘향주’ 계열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약용 술로도 기능했습니다.

 

고려 시대, 술로 본 지역의 개성과 역사

고려시대의 공물 술은 단지 조공의 일환이 아니라,

각 지역이 품은 자연과 기후,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녹아든 결과물이었습니다.

 

지방의 술맛은 곧 그 지역의 얼굴이었고,

이는 오늘날 전통주가 지역 대표 상품으로 자리 잡는 데 있어 뿌리 깊은 근거가 됩니다.

 

술 한 잔에 담긴 과거의 이야기를 음미하는 일, 그것이 바로 인문학적 음미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