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0 궁중 연회에 등장한 술잔의 크기는 얼마나 작았을까? 궁중 연회에 등장한 술잔의 크기는 얼마나 작았을까?작은 잔이 주는 큰 의미조선시대 왕실의 연회에는 늘 술이 빠지지 않았습니다.하지만 그 자리에서 쓰인 술잔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작았습니다. 어떤 잔은 손톱만 했고, 어떤 잔은 한 모금이면 비워지는 크기였습니다.왜 그렇게 작았을까요? 단순히 절약하려던 걸까요? 작은 잔, 큰 절제조선은 유교 사회였습니다.유교에서는 절제를 중요한 미덕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술을 마실 때도 ‘많이 마시는 것’보다는 ‘조심스럽게 마시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특히 궁중 연회에서는 예법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작은 잔이 예의에 맞는 도구였던 셈입니다. 실제로 얼마나 작았을까?고궁박물관에 전시된 술잔들을 보면 대부분 20~40ml 정도입니다.요즘 소주잔보다도 작.. 2025. 4. 30. 실록 속 ‘주독 사건’ – 조선시대 주사에 얽힌 이야기 실록 속 '주독 사건' - 조선시대 주사에 얽힌 이야기술 때문에 생긴 사건들, 실록에 기록되다조선왕조실록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닙니다.수많은 인간 군상과 그들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긴 기록물입니다. 특히 ‘주독(酒毒)’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대목은 술로 인한 사회적 문제, 개인의 일탈, 혹은 정치적 파문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들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술로 인해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이 실록에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술에 취한 신하, 국정을 그르치다술을 지나치게 마셔 직무에 소홀하거나, 심지어 왕 앞에서 실언을 한 신하들도 종종 있었습니다.중종실록에는 한 관리가 음주 후 국정을 논하다가 왕에게 반말을 해 파직된 기록이 있습니다. 세종실록에서는 지방관이 술에 취한 채 민원을 무시한 사건도 등장하죠.술은.. 2025. 4. 30. 고려시대 공물로 바쳐진 술들 – 지방마다 다르다? 고려시대 공물로 바쳐진 술들 - 지방마다 다르다?술도 공물이 되었다?고려시대는 관청 중심의 수취 체계가 정교하게 운영되던 시기였습니다.쌀, 베, 소금 등 생필품뿐 아니라 각 지방의 특산물도 공물로 바쳐졌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술’이었습니다. 술이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 왕실과 중앙 관청에 헌납되는 물품이었다는 점은 당시 술이 지닌 사회적 위상을 보여줍니다. 지방마다 술맛이 달랐던 이유고려는 지역마다 기후와 곡물이 달랐습니다.전라도는 따뜻한 기후로 인해 쌀이 풍부했고, 경상도는 조와 수수 등 잡곡이 많았습니다. 강원도는 찬 기후 탓에 발효가 느렸고, 황해도와 평안도는 맑은 물로 유명했죠.이런 자연 조건은 각 지역에서 빚어낸 술의 향과 맛을 결정지었습니다. 공물로 올라간 술은 중앙에서 맛과 품질을 비교하.. 2025. 4. 30. 삼국시대 왕실 전용 술은 어떤 맛이었을까? 삼국시대 왕실 전용 술은 어떤 맛이었을까? 왕실 술은 일반 백성의 술과 무엇이 달랐을까?삼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실에서 마셨던 술은 단순히 취하기 위한 음료가 아니었습니다.술은 권력과 신성, 신분의 상징이자, 외교와 제사의 핵심 요소였습니다. 당시 평민이 마시던 술은 보통 집에서 발효시킨 탁주나 막걸리 형태였지만,왕실에서는 훨씬 더 정제된 기술과 귀한 재료로 만든 특별한 술을 즐겼습니다. 고구려의 토기 속에서 드러난 술 문화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연회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이를 통해 고구려 귀족 사회에서 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다듬은 쌀과 꿀, 약초 등을 넣어 장기 발효시킨 술은 고급 술로 간주되었으며,그 맛은 부드럽고 달콤하며 향긋한 향이 났던 것으로 추정.. 2025. 4. 29. 이전 1 2 다음